나로 돌아오자, 그러면 열린다!
근력 이유이든 유연성 때문이든, 자신이 취하지 못하는 요가자세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요가자세를 해내기 위해 필요한 근육을 늘리고 또는 강화하며 노력한다.
그리곤 어느새 그 자세를 해낸다. 기분이 좋고 성취감도 느껴진다.
거기에다 담당 요가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칭찬까지 해주었다면,
기분은 더욱더 좋아질 것이다.
덕분에 요가에 대한 재미가 더 생기고, 더 열심히 하고싶은 마음도 든다.
여기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왜 그 자세를 해내려고 노력한 것일까?
왜 그 자세를 해냈을 때 기분이 좋은 것일까?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을 때 기분은 왜 더 좋아졌을까?
그 과정을 통해 요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마음수련을 지도해주시며 안내해주셨던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내용을 여기에 적용해보자.
우리는 인간으로서 모두 다 필요로하고 채우려고 하는 주된 심적 니즈 – Needs가 있다.
1) 사랑에 대한 니즈 (내가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것)
2) 확실성에 대한 니즈 (불안함이 아닌 확실한 – 보장된 상황에 있는 것)
3) 중요성에 대한 니즈 (내가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각 사람의 배경, 경험 등에 따라, 이중 한 두가지의 욕구가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핵심 요소가 된다.
자세를 해내며 요가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을 때,
사랑의 욕구가 강한 사람은 선생님의 따듯한 말과 목소리를 기억하며 사랑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확실성의 욕구가 강한 사람은 선생님의 칭찬을 통해 자신이 자세를 확실히 해냈다는 점에 대해 만족감과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중요성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은 모든 수련생들 앞에서 칭찬을 받으며 자신이 특별하고 중요한 사람, 요가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에 대해 흡족해 할 것이다.
이렇게 똑같은 상황에서도 초점이 맞춰지는 부분이 다르고 받아드리는 것도 각각 다르다.
사랑, 확실성 또는 중요성에 대한 니즈를 지니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특정된 니즈에 의해 말, 행동 또는 의사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편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맛있는 밥상을 차리는 것,
통장에 생활비가 늘 확실하게 유지되게끔 직장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고 꾸준히 다니는 것,
학교에서 특별하며 중요한 학생이 되기위하여 열심히 공부를 하고 사교적으로 활동하며 전교 1등, 학생 회장이 되는 것,
여기에서 문제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살다보면 사랑, 확실성, 또는 중요성에 대한 니즈가 지나치게 과할 때가 있다.
그 니즈가 충동적으로 튀어나오고 통제가 되지 않을 때 우리에게 문제가 생긴다.
아니… 문제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럴때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다.
만약 요가 자세를 해내기 위해 노력하며 사랑, 중요성, 또는 확실성에 대한 과한 니즈가 발동이 걸려 이런 생각들로 가득차있다면….
* 오늘 선생님이 왜 이렇게 차갑게 대하지?
* 내가 못하니깐 눈길을 안주나?
* 선생님이 나를 칭찬해주셨는데, 정말 진심이었을까? 그냥 하는 말이었나?
* 사람들이 내가 잘하는 것을 보고 있나?
* 선생님이 나를 무시하나?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 난 연습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이정도 하는데, 왜 내 친구는 못하지?
등등
이러한 생각이 꽉 차있는 상태에서 요가자세를 연습한다면, 과연 얼만큼 즐길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있을까?
나의 경험에 의하면, 요가할 때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런 생각들에 휩싸여있을 때 나는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하고 현명한 의사결정도 못하며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요가 수련은 단순한 육체적 운동이 아니다. 요가는 심신 수련이다.
요가를 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자각하기 연습이라고 한다.
자신을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이런 생각들, 남 또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자기 도취적인 생각들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 바라보고 보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행동인지… 를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이 자신의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집착하며, 막상 그 니즈를 충족하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요가를 즐기지도 못하며 결국 자신이 손해를 보고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나로 돌아오고 나와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그리고 나로 돌아오면, 이러한 과한 니즈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그러면 나는 그러한 생각에 연연되는 행동 또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게 될 것이고,
요가를 하든 남편을 위해 요리를 하든,
그저 그 자체를 즐기면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가능성이 열린다.
그리고 오히려 주변이 그것을 더 사랑해주고 아껴줄 것이다.
두손모아,
자이요가
